마음의 풍경
서 성 록 ㅣ 미술평론
작년 L.A의 앤드류 샤이어화랑에서 개최된 노정란의 작품전에 관한 보도자료는 이 작가의 작품면모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 바 있다.
"노정란의 추상작업은 힘에 넘지는 붓질과 서정적인 색감 그리고 서체적인 선적 요소가 한데 어우러지는 세계를 탐구한다. 그녀는 화사하면서도 무게있는 하모니를 추구하고 한편으로 대담한 흑색을 절제하면서 사용하는 휼륭한 색조의 연금술사이다. 이러한 행위는 긴장과 이완을 유발시키는 힘을 갖고 있는 동시에 역동적인 화면 구성을 촉진한다. 그리하여 그녀는 동양의 절제 덕목을 서양의 현대적 표현주의의 언어와 결합시키는 것이다."
노정란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앞의 인용문은 친절한 안내가 되어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짤막한 이 문장은 작가의 작품성향을 잘 요약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미서부의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한인 작가의 작품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그것도 최근작에 대해서) 밭에 씨를 뿌리지도 않고 팥나와라 콩나와라 하는 식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것은 곧 작품을 무시한 글쓰기가 될 터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여행 중 작가의 작업실에 들러 근작을 접하고 그녀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부분적이나마 노정란의 작업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녀의 작업실은 여느 작가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었지만, 벽에 걸어놓은 미완성의 작품들, 그리고 테이블 위나 작업실 구석구석에 수북이 쌓아놓은 한지작품들은 단적으로 작가의 평소 작업량 그리고 성실성, 의욕 따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으로 비춰졌다. 작가 자신의 말대로 작업실에 매여 있는 시간 외에는 화랑, 미술관을 찾거나 동료작가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생활의 전부라고 하니 조금은 건조한 생활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과 아울러 예술에의 길을 천직으로 여기는 작가 중 한명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전문작가라면 이 정도로 자신의 삶을 예술에 헌신할 줄도 알아야 하며, 이러한 생활의 습성을 스스로 지키려고 애쓰는 모습은 보기에도 즐거웠다.
노정란의 화면은 캘리포니아의 일광처럼 밝고 명랑하다. 시원스러운 운필과 높은 명도의 색깔들, 그리고 대담하고 간명한 화면구성은 우리의 시야를 확 트이게 할 뿐 아니라 그늘진 마음의 부분을 금새라도 정화시켜 줄 것만 같다. 이러한 그녀의 작품은 과연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엉뚱한 생각인지 모르지만 혹시 그것이 기후나 풍토 또는 지리적 환경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환경이 작가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점은 다음의 발언에서 잘 확인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살면서 넓게 확 퍼져 트이고 옆으로 길게 누운 듯한 언덕과 능선, 또 수평선의 인상을 많이 보아왔다. 그리고 그 사이의 도시 속에 건물을 비집고 삐죽삐죽 솟은 야자수와 싸이프러스 나무는 붓터치를 율동적으로 늘어놓은 듯한 풍경이었다. 태양을 사랑하고 항상 꽃이 피어있고 해풍과 밀물이 끊이지 않으며 파도높이를 즐기기 위해 젊은이들이 운집하는 곳이 그곳이다.
잠시 걷거나 10분 내지 20분만 차를 타면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파도와 수평선을 보고 바다의 풋풋한 냄새를 맛볼 수 있는 곳, 그속에서 나의 강한 색감, 자신있는 붓터치가 태어나게 되었는지 모른다." (노정란 『삶의 조화와 균형을 담은 심경의 조화』, ≪공간≫ 84년 5월 p132)
원색조의 화면과 대담한 운필, 그리고 시원한 화면 구성 따위의 등장이 작가가 머무는 환경, 기후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앞의 발언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물론 이런 경향은 서부 연안에 거주하는 박혜숙, 정연희, 박영준 그리고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곽훈의 작품 속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하게 나타난다. 색채의 강렬성, 선명도, 그리고 몸짓의 강조, 큰 스케일 등 서로 닮은 데가 있어 보인다. 그리하여 조금은 표피적인 분류가 될 지 모르지만 서부연안의 한국작가들이 동부연안의 지적, 개념적, 도시적 성향과 달리, 감성적, 경험적, 자연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얘기를 듣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또 이런 변별점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서부연안의 작가들은 보다 동양적, 한국적 미의 원형의 추구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물론 여기서 말하는 '동양적, 한국적 미의 원형'이란 어떤 정신이 전형화된 것이라기 보다는 운필경영, 색의 순화, 명상의 강조 따위와 같은 작품의 현상적 측면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노정란의 경우, 특히 작품제작에 주안점을 두는 부분은 내면세계, 더 구체적으로 말해 작가의 심리, 감정상황이다. 한 마디로 내면의 정서상태를 풍경화한다는 것이다. 그녀가 1984년 경 국내에 잠시 머물면서 선보인 작품의 제목이 <마음의 풍경 - Mind Landscape> 이라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정서를 표출하는데, 주요한 계기로 삼고 있는 것이 '대조'이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화면에 있어서 흑/백, 남성적인 것/여성적인 것, 음/양과 같은 대립적 요소들은 그것들이 서로 혼합, 침투될 때 비로소 '하모니'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보다 구체적인 보기는 화면구성에서 나타나는 수직적인 것/수평적인 것의 대조에서 찾아진다. 수직적인 것이 긴장을 상징하고 수평적인 것이 이완을 상징한다면, 이 두 요소의 맞물림을 통해 화면은 역동성과 박력을 지니게 될 뿐만 아니라 전자가 흥분, 고조, 환희 따위를 상징하고 후자가 평온, 고요 따위를 상징한다고 볼 때, 작가는 상호대립적 감성기제를 서로 충돌시킴으로써 심적 상태를 보다 적극적으로 표출해내려 하는 것이다. 작가의 말을 잠시 빌면, "잠재의식 속에 있는 심오한 경험 속의 직감을 표면으로 이끌어내" (노정란 「삶과 조화의 균형을 담은 心景의 조형」, ≪공간≫, 1984년 5월, p. 132)고자 하는 셈이며, 그러한 정박지에 도달하기 위해 상호침투, 충돌의 대조를 경유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서구적 양식과 구분짓는다. "내 작품은 신표현주의와 흡사하지요. 하지만 서구 신표현주의자들이 대상을 해체하는 것과는 달리, 나는 무엇을 그리기 전에 산이나 사람을 떠올리고 흡사 승려처럼 그것을 심적으로 명상합니다" (Jennifer Jean Robinson과의 인터뷰 중에서). 이 대목에서 우리는 통상적인 추상작품과 대별되는 하나의 차이점을 끄집어 낼 수 있다. 즉 그녀에게 있어 화면의 이미지는 구체적 대상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밑 자료를 각색, 변형시킨 엄연한 대상지시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굵은 획이나 축약된 공간구성, 원색의 즉흥적 구사 따위는 대상과 사실무근한 것이 아니라 대상세계를 단순화, 상징화시키거나 그것을 발전적으로 해석한 결과물로서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해서 그녀의 작품을 소박한 자연반영체로 귀착시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비록 자연 속에서 착상되고 그 이미지가 화면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기는 하지만, 작품의 생명력은 오히려 일련의 형식 요소들, 이를테면 색감, 구성, 그리고 원모양이나 네모꼴의 형태 속에서 두드러지게 발현되는 나름의 운율적 질서의 성립을 지나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렇듯 그녀의 작품은 자연세계의 반영과 자아의 내적 심경의 투영이라는 이중성격을 띠고 있으며, 그것은 상호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요약하자면 자연풍경을 접하면서 느끼는 감흥을 교묘히 자신의 잠재의식과 접맥시켜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켜 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 속에 풍부한 형식 구사력과 고밀도의 평면 해석력을 가하여 우리에게 마침내 정서적 울림을 지니도록 유도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보편적 감정인 즐거움, 슬픔, 번민, 고통에 호소하면서도 한편으로 그것을 윤택한 조형의 어휘로 소화해냄으로써 보다 순화된 단계, 즉 내면세계속에 앙금으로 축적되어 가라앉은 까맣게 잃어버렸을 지도 모를 삶의 부분들과 자취들을 다시금 들추어 내보는 듯한 느낌에 빠뜨리는 것이다.
선미술, 1991. 5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