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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에서 형상으로

김 용 대 ㅣ 전 대구 · 부산시립미술관 관장

노정란의 이번 개인전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이전의 개인전들에 비해 상당히 투명해졌다. 투명함을 가진다는 것은 색감과 더불어 화면의 구성이나 구도 또한 일정한 완성도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그동안의 개인전에서 보여 주었던 격정적인 색감의 폭발은 작가의 개인적인 감정과 무관치 않다. 화면을 거칠게 휘젖고 다니는 붓놀림의 흔적들 또한 그만의 강한 몸부림이다.


94년 갤러리서미의 전시 팜플렛에 기록된 작가의 작품노트에서 나타난 생각들을 정리해 보면 좀더 확실하게 이해될 수 있다. 먼 이국땅에서 겪어야 했던 개인적인 사연들과 고국을 그리워하며 그려보았던 풍경들이 현실을 오가며 작품 속에 반영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박여숙화랑에서 보여 주었던 작업들은 그동안의 개별적이고 소극적이었던 작업에서 벗어나 좀더 자유로운 느낌을 준다. 인간의 감정이나 의식이 보편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변적인 것에서 하나의 기호를 가지게 되었다. 그 기호 또한 거칠고 미완성 같은 상태에서 정리하고픈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전 회의 개인전에서는 T자 같은 기호나 ∞(무한대) 같은 기호 등이 화면의 배경을 기초로 하여 부유하듯 떠돌아 다녔다. 어찌보면 작가 심상의 자화상을 그린듯 하다. 그러나 이번 전시회에서 보여 주었던 작업들은 화면을 기초로 하여 그려진 어떤 기호들이 화면과 밀착된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바탕이라는 것과 그위에 표식된 것들이 하나의 동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의식의 파편들이 하나의 개념에 의해서 모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 개념은 노정란의 심리적 상태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듯하다. 20여 년 가까운 미국생활을 마치고 고국에 돌아와 어떤 정착을 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많은 사상의 파편들이 새로운 구성을 엮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의 전환이 곧 화면의 구조로서 작용하고 있다. 또한 맑은 투명성은 단순한 색감의 변화나 걸러짐이 아닌 많은 의식의 혼돈에서 정착으로의 세계로 지향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투명성과 더불어 부유했던 기호들이 하나의 상징성을 획득하게 되었으니 화면의 힘들이 질서를 가지기 시작했다. 이 상징성 또한 기호화하는 단순한 과정이 아니라 원초적인 형상으로서의 가능성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이 형상은 노정란의 심리적 흔들림이 수많은 과정들 속에서 탄생되어진 자발성이 되었다.

 

​월간미술, 199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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