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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란의 명상적인 그림

정 병 관 ㅣ 미술평론

자연에서 받은 느낌이든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이든간에 억누를 수 없는 기쁨을 노래한 밝기만 한 그림으로부터 명상적인, 조금은 우울하고 어둡기조차 한 그림으로 노정란 그림이 변한 것은 지난 수년 동안에 일어난 일이다. 화가 자신은 나이든 것과 병행하여 그림도 성숙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실 그림이 변화하는 원천이 무엇인지는 규명하기 어려운 문제임에 틀림없다.


인생에 대한 생각과 세계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그림에 대한 미학적 사고도 변한 것 같다. 서양적인 그림(?)이라면 이상할지 모르지만, 동양화적인 어떤 분위기가 없는 그림으로부터 매우 동양적이라는 느낌이 풍기는 그림으로 바뀐 것도 사실이다.


감미로운 색채와 밝은 빛이 가득찬 화면, 따뜻한 태양과 향기로운 바람이 바닷가 맑은 공기를 휩쓸고 지나가는 것 같은 감각적인 환희에 넘치던 그의 그림의 세계는 어디로 갔는가? 마치 고갱이 인상파의 그림이 피상적이라고 비판하며 상징주의로 변신한 것처럼 노정란 역시 내면세계의 표현을 위하여 감각적인 세계를 버린 것 같다. 내적인 정신세계에도 기쁨이 없으라는 법은 없다. 심각한 어두운 색조에도 즐거운 빛깔이 섞여 있어 절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음양이 조화되고 슬픔과 기쁨이 적당히 섞여 있어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 조화된 세계 속에 삶이 영위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직관을 강조하고 일필주의一筆主義적인 붓의 단호한 흔적을 중요시하며, 색채도 화려한 원색보다 우울한 회색조와 동양화의 먹색같은 검정을 선호하며, 화선지나 동양화용 붓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케 하는 노정란의 그림은 인간적인 성숙과 미학적 사상의 변화가 함께 그 원천이 된 것이라 생각된다.


신비로운 공간 속에 걸려 있는 강한 형태들은 구체성도 추상성도 아닌 애매한 영역에 머물러 있다. 점과 선이 그리고 얼룩진 공간과 면들이 물질과 정신 사이에서 고뇌하는 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 누가 완벽하게 정신적인 세계를 그려 낼 수 있단 말인가. 물질세계는 항상 정신을 드높여 주기 위해 필요한 존재는 아닌가. 노정란은 이 두세계의 조화를 생각하며 현상과 이상의 조화를 그림에서 실현시키고자 노력하는 한 사람의 화가이자 구도자와도 같다고 생각된다.

 

​선화랑 전시도록,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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