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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미 진 ㅣ 미술평론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2004년부터 시작해온 <색 놀이-쓸기>(Colors Play Sweeping)의 최근작을 선보였다.


대형 화면에 강렬한 원색의 속도감을 가진 색띠를 그린 캔버스 작업은 그 하나하나가 회화의 힘을 발휘하며 전시 공간을 장악하고 있었다.
가로 4m의 기다란 캔버스는 노랑, 파랑, 올리브의 강렬한 원색들이 두꺼운 붓터치로 빠르게 수평으로 쓸며 색을 덧입히고 거친 붓의 흔적 밑에 깔린 색들이 묻어나와 미묘한 화합을 만들어 내고 있다. 작가는 만족스러운 색을 얻어내기 위해 물감을 섞고 묽기를 조정한 후 캔버스 화면 위에 붓고 넓적한 빗자루로 단번에 쓸어내리며 속도감 있는 터치를 반복하면서 작품을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작가노트에서 "한 겨울에 쌓인 눈을 쓸어내다 보면 빗자루 결에 의해 낙엽, 흙이 겹겹이 드러나며 흔적과 함께 그림을 만들어낸다"고 설명하고 있다. 겨울철 눈 쓸기 빗질에서 눈과 함께 드러나는 바닥은 봄을 기다리는 파릇한 생명이 숨어 있기도 하고, 화려하고 풍요로운 색채를 갖고 떨어진 낙엽으로 덮여 있기도 하다. 또한 이 모든 것이 썩어 스며들어가 명도를 만들어 내는 흙이기도 하다. 빗질 사이로 눈과 합쳐져 보이는 땅에서 드러내는 색의 감각세계는 우주와 자연으로부터의 횡적인 시간대이며 삶과 죽음이 연속 되어진 생명 존재의 흔적들이다. 모든 것을 덮는 하얀 눈은 빛의 색이 되어 내층에 있는 색들과 혼합하면서 원래 색의 빛을 더욱 확연히 드러내 보인다. 이 원래의 색을 표현하기 위해 일정하게 힘을 조정하며 일관되게 쓸어내려야 하는 '빗질 터치'는 호흡의 집중을 요할 것이다. 물감, 캔버스, 빗자루라는 질료와 하나가 되지 않으면 힘이 부치거나 너무 과잉 조정되어 물러 흘러내리게 될 것이다. 질료와 함께 작용하는 몸은 빗질 속도의 변화와 일치하면서 일정하게 횡단된 선을 적절히 표출해 낸다. 그러나 빗질이 만들어내는 것이 완전한 면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물감과 배경 물감의 마르는 시간성에 따라 틈새 공간이 드러나면서 그 색들이 혼합되거나 다른 색을 만들어내며 이상적이고 심오한 회화적 조화를 보여주게 된다. 그것은 색채로 자연과 맞닿게 하는 경건하고 심오한 경지에 빠져들게 하는 로스코의 대형 캔버스 작업과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또한 보는 사람까지 확장되고 포함하는 비잔틴 미술의 공간감과 기운생동의 서체 등 작가와 우주가 혼연일치 된 공간과 빛의 점진적 해방의 단계와도 닿아 있다.


노정란은 빠른 시간성으로부터 나오는 근원적 세계의 수축과 팽창을 담아내고 있다. 어두운 것을 담아내는 밝은 원색은 단번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켜켜이 쌓아서 나오는 색 자체의 빛이다. 그것은 매우 정신적으로 보이며 고통을 경험한 완숙한 경지에 다가가는 연륜이 만들어 내는 세월의 빛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은 건강한 육체적 힘이 개입되어 생생한 표면을 표현해 내고 있다. 이번 작업들에서는 작가가 살아온 세월 전체가 들어있는 관조된 빛과 에너지가 최고로 발휘된 귀한 순간을 볼 수 있었다. 강렬하고 격렬한 표현 안에는 정돈된 자세에서 힘을 전체적으로 골고루 실어 나온 것이기에 그림을 그려온 수련의 시간을 짐작하게 한다. 어두움과 밝음, 스며듦과 드러냄, 강한 보색은 서로 얹어 쌓아가며 쓸어내는 인내를 통해 색의 다채로운 흐름의 위치를 획득한 것이다.


오랜 작업의 숙련된 행위가 질료의 감각을 통과하며 단순하게 보이는 색으로 표현하고 있는 <색 놀이-쓸기>는 영원과 우주, 정신이라는 내면적 요소가 담긴 미적 본질에 다가가고 있는 작업이다. 그리고 생명의 깊은 곳에 있는 정情을 끌어내고 융합시키는 기운생동의 실천적 작업이기도 하다.

 

 

Art in Culture, 2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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